보도기사
2004년 4월 - 취미살려, 국내 최초 손뜨개전문기업 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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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5-06
작성자 : 뉴스광장
조회수 :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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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수편물 사업(?) 이라고 하면 동네 작은 수예점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송영예의 바늘이야기"하는 업체를 이쯤으로 여기지 말것. 지난 98년 문을 연 이 업체는 현재 70여개의 체인점을 거느린 엄연한 중소기업체다. 또한 자체 브랜드를 개발, 국내 대형 백화점 입점을 앞두고 있으며 중국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처음부터 사업에 욕심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였어요. 그저 주어진 일을 한 것뿐인데, 이렇게 됐어요. "국내 최초로 손뜨개를 "사업화" 시킨 주인공의 답변치고는 너무나 소박한 것이었다. 대학졸업후 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송영예 대표는 "태교에 좋다"는 말 한마디에 손뜨개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곧장 뜨개질 잘하기로 소문난 이웃집 아줌마를 찾아갔다. "눈앞에 보이는 일은 당장해야 직성이 풀리고,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앞뒤 재지 않고 시작부터 하는 성격이예요." 손재주는 타고난 터라 뜨개질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모로고 푹 빠져들었다. 때마침 남편은 지방근무 중이였고, 주말부부 신세였떤 그녀는 뜨개질에 더욱 열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회사에서 포상금을 받아와 컴퓨터를 장만하게 된다. 이것이 송 대표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PC동신이 생소하기만 하던 95년, 그녀는 손뜨개질을 동호회를 만든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알게 된다는 것이 흥미로워 또, 한 동안 PC통신에 빠져 살았어요. 그러다가 뜨개질이 취미인 사람들과 온라인상의 모임을 가지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폭도 넓어지고, 서로 정보도 교환할수 있는 등, 이래저래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동호회인 셈이죠" 우연히 찾아온 두 번의 기회 당연히 이 동호회 방장은 송 대표 "제가 동호회 방장이다 보니 가끔씩 잡시사에서 작품을 연재해달라는 의로가 들어왔어요. 이때부터 작품과 글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거죠. "잡지연재를 단순히 취미수준으로 불 수 없다고 생각한 송 대표는, 외국 서적을 탐독하고 손뜨개 방식이나 소재 등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시작한다. 뜨개질 잘하는 "아줌마" 에서 "전문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셈이다. 이렇게 해서 정보는 쌓여만 갔고, 어떻게 해서든 취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송 대표는 국내에 손뜨개관련 정보가 많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그녀는 98년 "송영예의 바늘이야기" 라는 개인홈페이지를 열어 자신이 모아둔 정보를 올렸다. 당시 PC통신사에서 정보제공을 통해 수입을 얻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통신업체에 제안서를 제출해 정보제공업을 시작했죠. 그때는 아르바이트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내친김에 송대표는 전자상거래에도 도전한다. 남대문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고객이 주문한 제품을 포장해 발송하고, 튼틈이 손뜨개 강의도하고, 밤에는 사이트 관리까지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몇 년간 하루 4시간도 채 못 잤을 정도로 얼심히 살았어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00년 말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바늘이야기"의 상호가 예쁘다면서 상호를 쓰고 싶다고 요청해오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 처음에는 가맹비도 받지 않고 무료로 체인점을 내줬어요. 차마 가맹비를 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체인점을 하겠다고 문의가 쇠고했고 송 대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의 이름을 건 상호를 아무에게나 내줄 수 없는 노릇. 우선 희망자를 만나 뜨개질 수준을 테스트한 후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3개월씩 가르쳤다. 그 3개월의 과정이 끝나야 체인점으로 등록시켰다. " 손뜨개질이 라는 게 기계로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체계를 갖추지 않고 체인점을 내줬다가는 그 의미가 무색해 질 것 같았어요. 이 뿐만이 아니다. 체인점 등록 후에도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사후관리(?)까지 철저하게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많은 체인점들 중에서 문을 닫은 지점이 아직 한 곳도 없다고 한다. 더욱이 " 송영예의 바늘이야기" 만의 색깔이 점점 짙어져 자체 브랜드까지 개발해 냈다. 여기까지 오는데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전자상거래를 시작한 지1년도 안 돼 뜨개질 관련 무료사이트들이 생긴 것이다. "유료에 항의하는 고객들의 글이 게시판에 가득했어요. 또 , 그동안 재료 구입처였던 동대문 상인들과으 갈등이 생겼어요. 고객을 제가 빼앗다고 말이죠" 그러나 송대표는 좌절하지 않고 동영상 강의를 도입해 유료 고객을 잡았다. 또 동대문 상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과 일본에서 직접 손뜨개용 고급 실을 수입해 지금은 자체 생산도 하고 있다. 봄의 시작과 함께 수편물 사업은 비수기로 접어든다. 또 한번의 기비가 찾아온 것이다. 이쯤되면 초초해질 법도 한데, 송 대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이미 나름의 대책을 강구해 놓은 까닭. "수편기라는 기계가 바로 그것 이다. 여름철 수편물은 아주 얇은 실을 사용해야한다. 그런데 이 얇은 실은 수작업이 불가능하다. 바로 이때 수편기를 이용해 반제품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마무리와 기교는 수작업으로 처리해 여름철에도 손뜨개 한 옷을 입을수 있도록 한것. 이렇듯 위기를 기회로 만들줄 알고, 여기에 유비무환의 자세까지 갖춘 그녀는, 영락없는 사업가다. "즈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분들이 "단단해졌다"고 하세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 그렇게 물러서 어떻게 사업을 하겠냐"는 충고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말이 왜 그렇게 서운하게 들려지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사람이 변했다 는 뜻이 아닐까 해서요" |


